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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8. 18世 〉6. <요재공>가선대부공휘동후묘갈명(嘉善大夫公諱東垕墓碣銘)
1. 문헌 목록 〉18. 18世 〉8. <부정공>청재공휘하상가장(淸齋公諱河祥家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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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정공>규상(奎祥)配 유인원주김씨가장(孺人原州金氏家狀)
(부정공후)18世규상(奎祥)配 유인원주김씨가장(孺人原州金氏家狀) 孺人姓金氏貫原州考進士諱聖求妣某氏某貫諱某之女孺人生于 正廟戊戌八月十八日禀貞烈之德性服端莊之家法婉娩聽從不勞姆敎而自得勤績助奠實備女工而克行其於十純之德三從之道無不實體而服膺焉及其嫁年歸于吾從曾祖自是泰仁公八世嗣孫也其奉先裕後孝親敬長愛育卑幼撫恤婢僕冠昏喪祭接賓容物優爲傳世家範矣自孺人于歸吾家遺法一增維新孝養舅姑甘旨愉婉志體備至舅姑曰孝婦也承順君子爲君子之賢配每當先忌夫婦親之前期齋戒躬精粢盛躬蠲器皿必致先靈之歆格先靈應垂冥詔曰賢吾宗婦也敬奉二媤叔媤叔曰賢吾丘嫂也不敢無禮於二姊二姊曰賢吾姒也敬事尊長撫育卑幼尊卑咸稱賢恩恤藏獲藏獲咸戴曰賢主母也善推親親而施仁村窮村窮心悦口頌曰寧渴謙川水無渴某宅惠波比隣湛軒公屢加稱獎曰隣居而不聞其夫人言語有聲此是韓氏歸三年長幼不見齒之同一閨範也因其考敬將有吾門昌大之望矣及舅沒而助君子哀奠盡制年至三十四奄喪天育一女無丈夫子一遵敬姜晝哭之禮備盡情文謹守其法而保家至於耕田鋤畝委任於奴婢制產資業奉祭接賓一無擅獨必參知於二媤叔而與二姊共之每歲秋成則精舂米每位各封粢盛精壓眞油各藏每刱臨時隨位備用享祀厥明團席家中長幼頒其餘需而食之低聲而吿曰窃甞聞家訓先祭是後孫之致誠盡禮者也祖考之精神乃子孫之精神故古禮之用尸童必有以也爲其子孫若當此日渙散不聚翕其精神則先靈安從以昭格乎人而不知報本之道不有豺獺不如之誚乎姑老而雖傳家事養之盡誠事無大小必遵其命而遂行矣及姑沒必聽從二媤叔哀毀盡禮其於送終之道毫忽無違克終三年焉晩取季媤叔之長子而子之敎養有義女年及笄適宋氏不厚資裝但施結衿悦曰汝是喪父長子吾不賢敎無法勉之敬之夙夜無違宮事後有從女家來者稱道其善執婦道治產勤若則孺人曰素懶無敎何爲其然也子年長成娶婦入室以家事委托焉孀居四十有五載貞淑雅飭見重於人丙辰九月二十一日終春秋七十九墓道理峰先瑩下戌坐載昇平誌淑媛篇從曾祖諱奎祥玉川趙氏玉川府院君忠獻公諱元吉后也高祖諱維春曾祖諱光耘祖諱重命考諱廷良妣南原梁氏嘉善聖徽女孺人育一女無男子子取弟灝祥長子永學爲嗣女適洪州宋廷瑗永學系子平根二女竹山朴九鉉興德張東圭妻曾孫一男一女男南鉉女平山申泰允妻平根出朴海柱朴海棟朴海標朴婿三男昌容張婿一男也嗚呼孺人式躬宜家之善德永世宜家之福慶乃是天報之不爽也奈之何早世孤孀後嗣不昌使吾家百世痛恨於福善之常理乎雖然其端莊之性慈惠之德孝敬之誠烈貞之行當爲吾家之天壤固不可以福祿之厚薄而顯晦者也自是葬後先墓歲祭日別具飯羹祝獻備行墓祭亦追報之異擧也近年謹傲魯衛禮又合封從曾祖禮魄幷行歲儀明靈庶鑑歟噫雙岩白也山十五代祖妣墓有碣銘南原雪巒山十四代祖妣墓有碑刻此爲吾家内法之垂後者也賢賢我從曾祖伯母不啻聊芳於古女士實爲善善繼述於先祖妣姑婦之閫儀則亦將竪碣而銘其德行俾作吾家篤倫之始正家之本鑑戒於來世故謹述家狀如玆焉 從曾孫 炳益 謹狀 (부정공후)18世규상(奎祥)配 유인원주김씨가장(孺人原州金氏家狀) 유인의 성은 김씨요 관향은 원주(原州)며, 고는 진사 휘 성구(聖求)이다. 유인이 정조 무술년(一七七八) 八월 十八일에 출생하여 정열한 덕성을 품수하고 단정한 가법을 본받아 상냥하고 유순하게 청종하여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길쌈과 음식 등 여공을 갖추었고 능히 십순지덕과 삼종지도를 체득 아니 한 것이 없이 복응하였다. 출가할 나이가 되어 우리 종증조에게 우귀하였는데 종증조는 이때부터 태인공의 八세 사손이라. 그 선영을 받들고 후손을 복되게 하며 어버이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어린이를 사랑하고 비복을 어루만져 관혼상제와 빈객 접대에 넉넉히 대를 전할 가범이 되었다. 유인이 우귀한 후로부터 우리 집에 끼친 법이 더 새로와 시부모를 효도로 봉양하며 좋은 반찬을 봉양하고 항상 기쁜 얼굴과 아름다운 마음씨로 받들어 뜻과 몸을 함께 봉양하니, 시부모에게는 현부요 군자에게는 현배였다. 매양 조상의 제사를 당하면 부부가 친히 기일 전에 재계하고 몸소 제물을 정히 하며 제기를 깨끗이 하여 반드시 혼령이 이르러 흠향하게 하니 선령이 명명한 가운데 내려와 「어진 우리 종부」라 하시었을 것이다. 시숙을 공경하여 반드시 시숙이 어진 우리 형수라 하고 두 누이에게 극진히 하니 어진 우리 집 맏며느리라 하였다. 어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어루만져 기르며 노복을 은혜로 구휼하니 다 그 덕을 기리었다. 친척들에게 어진 덕을 베풀고 가난한 동네 사람을 돌보아주니 모두 기뻐서 말하기를, 「겸천의 물이 마를지언정 아무개 댁의 은혜는 잊지 못하다.」 하였다. 담헌공이 여러 차례 칭송하기를, 「이웃에 살면서 그 부인의 말소리를 듣지 못하겠으니, 이는 옛날 한 씨(韓氏)가 三년 동안 이를 드러내 웃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그의 효와 공경이 반드시 우리 집안을 일으킨 것이다.」 하였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군자를 도와 상례를 예법대로 마치었다. 三十四세에 갑자기 군자가 돌아가셨는데 딸 하나만 두고 아들이 없으니 한결같이 경강 주곡의 예에 따라 갖추어 예를 다하고 삼가 그 법을 지켜 집을 보존하여 밭 갈고 논 매는 일은 노복에게 맡겨 산업을 일으키고 봉제사 접빈객에 한 가지도 마음대고 한 것이 없이 반드시 두 시숙에게 알리고, 두 누이를 더불어 함께하였다. 매년 추수가 끝나면 각위의 제미를 봉하고 참기름을 짜서 각각 병에 담았다가 제사에 썼으며, 향사 후에 집안 장유가 음복할 때 낮은 소리로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가훈을 들으니, 선영 제사는 후손이 정성과 예를 다해야 한다 하였다. 조고의 정신이 자손의 정성인 고로 고례에 시동(尸童)을 쓰는 것이 반드시 연유가 있는 것이니 그 자손 된 자 만일 이날을 당하여 흩어지고 정신을 모아 화합하지 아니하면 선조의 혼령이 어디로 좇아서 밝게 이를 것인가. 사람이 보본의 도리를 알지 못하면 승냥이와 물개만 같지 못하다는 꾸지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였다. 시모가 늙어서 비록 가사를 전하였으나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고 대소사를 반드시 그 명령을 따라 수행하였다. 시모가 별세하자 두 시숙의 말을 들었고 슬퍼 몸이 쇠하도록 예제를 다하였으며, 그 상례의 도리를 조금도 어김없이 능히 三년을 마치었다. 만년에야 끝 시숙의 장자를 양자로 삼아 의리로서 교양하고,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자 송 씨에게 출가시키되 혼수를 후하게 아니하고 다만 옷깃에 수건을 매어 주며 말하기를, 「네가 아비를 잃어 내가 잘 가르치지 못하여 법도가 없으니 힘쓰고 공경하여 주야로 어김이 없이 하라.」 하였다. 신행 후에 딸집에서 온 자가 착한 규범을 가지고 치산에 부지런하다고 칭도하니 유인이 말하기를, 「본시 게을러 배움이 없는 것이 어찌 그리하겠는가?」 하였다. 아들이 장성함에 며느리를 맞아들여 가사를 위탁하였다. 홀로 四十五년을 살며 정숙 단아하며 사람에게 존경을 받다. 병진년 九월 二十一일, 춘추 七十九세로 고종하니 묘소는 도리봉 선영 아래 술좌이고 사실이 「승평지」의 숙원편에 실려 있다. 종증조의 휘는 규상(奎祥)이요, 순창 조 씨는 옥천 부원군 충헌공 휘 원길(元吉)의 후손이다. 고조의 휘는 유춘(維春), 증조의 휘는 광운(光耘), 조의 휘는 중명(重命), 고의 휘 정량(廷良)이요 비 남원 양 씨(南原梁氏)는 가선대부 성휘(聖徽)의 따님이다. 유인이 딸만 두고 아들이 없으므로 아우 호상(灝祥)의 장자 영학(永學)을 취하여 후사를 삼았다. 딸은 홍주 송정원(宋廷瑗)의 처요, 영학의 계자는 평근(平根)이며, 두 딸은 죽산 박구현(朴九鉉)과 흥덕 장동규(張東圭)의 처이고 증손자는 남현(南鉉)이었다. 아! 유인이 몸소 행한 집을 화순하게 한 덕과 영세이 복경은 이에 어김이 없는 하늘의 보시인데 어찌하여 일찍 홀로 되고 후사가 창성하지 못하여 우리 집으로 하여금 백세의 통한이 되게 하니 이것이 어찌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는 도리인가? 그러나 그 단장한 성품과 자혜한 덕이며 효경의 정성과 열정의 행실은 마땅히 우리 집에 하늘과 땅이 되니 진실로 복록의 휴한 것과 박함으로서 나타나고 잠길 것이 아니로다. 이로부터 선묘에 세제 날에 별도로 메와 국을 갖추어 제사하니 또 추원보본의 다른 방법이다. 근년에 삼가 노위(魯衛)의 예를 모방하여 또 종증조 체백을 합봉하고 세의를 병행하니 밝은 영혼이 하감하실런지. 아! 쌍암 백야산 十五대 조비묘도에 갈명이 있고 남원 설만산에 十四대 조비묘도에 비각이 있어 이것이 우리 가법이 후손에게 남긴 법이다. 어질고 어진 나의 증조로 백모뿐 아니라 오로지 옛 여사의 향기를 실로 선조비 고부의 곤규에 착실히 계술하여 장차 비를 세워 그 덕행을 새긴 것은 우리 집의 천륜을 두텁게 한 시초와 집을 바르게 한 근본을 만들어 후세에 감계한 것인 고로 가장을 이와 같이 기술한다. 종증손(從曾孫) 병익(炳益)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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